
교사 빠진 조직 개편, 교육의 본질을 지웠다.
2025년 5월 22일, 전남교육청은 “학교가 교육 본연의 기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7월 1일 자 조직개편안을 공식 발표하였다. 김대중 교육감은 이를 “전남교육 대전환의 첫 결실”이라 자평했으며, 전남 지역 다수 언론 및 일부 교원단체는 해당 개편안을 ‘학교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긍정적 조치’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의 반응은 이와 현저히 상반된다. 전교조 전남지부가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교사 541명 참여)에 따르면, 1. 조직 개편과정에서 학교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답한 비율이 과반(52%)을 넘었고, 2. 학교행정업무경감 실효성에 대해 부정적 반응은 70.2%, 3. 교육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기 위해 경감해야 할 업무 1위 감사 등 점검을 대비한 법정장부외 문서생산, 2위 각종 박람회 같은 전시성 행사, 3위 민원대응 등으로 조사되었다.(설문조사 결과 첨부)
- 핵심을 외면한 조직개편, 교사 업무는 ‘제자리걸음’
전남교육청이 제시한 23개 행정업무 경감 과제 중, 교사가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교사의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핵심 행정업무는 오히려 교육부의 정책·시범사업, 교육청 주관의 공모사업, 각종 전시성 박람회, 학생동원성 행사, 감사 대응, 민원 처리 및 비공식 문서 생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업무는 개편 이후에도 여전히 교사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특히 법정 장부 이외의 과잉 문서화 관행, 반복적 민원 대응 절차, 실적 중심 행정 시스템은 교사의 교육 본연의 업무를 침해하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직개편은 이러한 본질적 문제에는 접근하지 않은 채, 주변적 업무의 조정만을 부각시키는 생색내기식 조치에 그치고 있다. 실질적 교육 여건 개선 없는 선언적 구호와 형식적 개편만으로 ‘교육 대전환’을 자평하는 것은 정책적 기만이며, 현장의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교사의 시간과 전문성을 갉아먹는 행정업무의 근본적 재조정 없이 행정 경감 효과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정책 효과의 왜곡에 해당한다.
- 민주시민교육 약화, 교권보호 기능 축소, 민원 대응과 기록관리 기능 약화 우려
이번 조직개편에서 전남교육청이 민주시민교육팀과 인권보호팀을 통합하고, 기록관리팀과 민원팀을 하나로 묶은 것은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약화, 인권과 교권보호 기능의 축소, 민원 대응과 기록관리 기능 약화를 가져올 담당 부서의 축소이다.
지금 학교 현장은 민원 폭증과 교권 침해라는 복합적 위기 속에 있다. 교사들은 과도한 민원과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고, 교권 보호와 인권 감수성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공교육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록물 관리와 민원 대응의 전문성 확보는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제 민주시민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후위기, 기술변동, 민주주의의 후퇴 등 시대적 전환기 속에서 학생들에게 공동체적 가치와 비판적 사고, 시민적 책임을 길러주는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전남교육청은 이를 축소하며 교육의 공공성·민주성 강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역행하고 있다.
- 교사 없는 개편 – 일방적 결정, 일방적 홍보
전남교육청은 이번 조직개편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다수의 교사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했는지 알 수 없다”며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시된 “현장체험학습 보조인력풀 제공” 방안은, 현장체험학습 업무를 획기적으로 경감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달리, 교사의 실질적 부담을 해소하지 못하는 보여주기식 조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행정업무 과중, 민원 스트레스, 교육활동의 침해 등 본질적 문제는 이번 개편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처럼 현장의 고통과 요구를 배제한 채, 외형적 개선만을 내세우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형식적 합의와 홍보성 담론을 반복하는 데 그칠 뿐이다.
“현장의 목소리”라는 표현이 정책적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교사를 단순 수혜자나 통계 대상이 아닌 정책 형성의 실질적 주체로 인정하고, 사전 의견수렴의 제도화와 공론적 검토 절차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 반복되는 이중잣대 – 규정 위반은 방치, 자화자찬만 반복
전교조 전남지부는 수차례에 걸쳐 교원이 법적으로 담당해서는 안 되는 업무—예컨대 회계 징수, 계약 체결, 제증명 발급, 통학버스 음주 측정 및 차량 점검(타이어 공기압 포함)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시정 요구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업무가 교사에게 배정되고 있으며, 이는 「지방공무원법」 및 단체협약에 명시된 직무 구분 원칙에 위배되는 행정 관행이다. 그럼에도 전남교육청은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거나 행정 지도를 시행하기는커녕, “업무 분장은 학교장 권한”이라는 해명을 반복하며 사실상 책임 회피와 행정 방조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번 조직개편을 “교사 중심의 행정개편”이라 자평하는 것은 정책적 자화자찬을 넘어, 현장의 실태를 외면하는 현실 왜곡에 가깝다. 교사의 업무경감이라는 정책 기조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업무배정에 대한 즉각적인 시정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청 차원의 실효적 행정책임 이행이 필수적이다.
- 무엇을 위한 개편인가? – 교사 부담은 그대로, 행정조직만 커졌다
일부 교사들은 이번 조직개편이 교육청 조직의 슬림화가 아니라, 오히려 행정조직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도교육청 인력을 줄이고 교육지원청에 재배치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행정조직 규모를 키우고 승진 자리를 늘리기 위한 개편 아니냐는 의문이 현장에 퍼져 있다.
“교사는 교육에만 전념하라”는 구호와 달리, 실질적인 교원 정원은 축소되는 반면, 일반직 중심의 행정조직은 확대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이 추진되고 있다면 이는 교사 행정업무 경감이라는 정책 목적과도 모순되며,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의 교육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 조직개편이라면, 단순한 인력 재배치나 양적 팽창이 아니라 기능 중심의 정비, 형식적 변화가 아닌 구조적 혁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교조 전남지부는 전남교육청에 요구한다.
- 교사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강행된 졸속적 조직개편을 즉각 철회하라.
- 교사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전면 재구조화하라.
- 실적 위주의 전시성 공모사업과 박람회는 전면 재검토하고 폐지하라
- 단체협약을 위반한 교사 대상 행정업무 배정을 즉각 중단하고, 교육청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인다는 것이 단지 몇몇 분절적 업무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공모·시범사업, 보여주기식 일회성 행사들을 줄이고, 불필요한 관행과 비효율적 행정절차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결국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전남교육청의 정책기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형식적 개편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되살리겠다는 뚜렷한 철학과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겉모습을 바꾸는 개편이 아니라, 학교현장을 존중하고 교사의 삶을 바꾸는 진짜 변화이다.
이후 전교조전남지부는 전남의 모든 교원단체와 교원에게 조직개편 관련 자료를 안내·공유하고, 개편안에 반대하는 단체들과 연대하여 기자회견을 비롯한 다양한 대응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2025년 6월 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