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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고두갑(국립목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대전환 시대, 초중등 교육의 위기는 문해력에 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 지식의 홍수 속에서 길 잃은 아이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대전환의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한 정보와 지식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떠받칠 가장 근본적인 능력, 즉 문해력(文解力)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글자는 읽지만 그 뜻을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재창조하는 힘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대한민국 초중등 교육이 마주한 수많은 과제 중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위기는 바로 ‘실질적 문해력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치와 현장이 증명하는 문해력 위기의 현실

 

문해력 위기는 더 이상 우려가 아닌, 통계와 교실 현장에서 증명된 냉정한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는 이러한 위기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PISA 2022에서 한국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경고등이 켜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읽기 영역에서 기초학력 미달에 해당하는 학생 비율이 2018년 15.1%에서 2022년 21.3%로 급증하였으며,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소한의 학업 수행에 필요한 문해력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읽기, 수학, 과학 세 영역 모두에서 학력 하락세가 심화되는 추세를 보인 국가는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했다는 점이다.

 

국내 평가 결과는 위기의 심각성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교육부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의 국어 과목 학력 미달 비율은 2017년 2.6%에서 2023년 11.3%로 4배 이상 급증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 역시 같은 기간 5.0%에서 8.6%로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성적이 부진한 학생이 늘어난다는 차원을 넘어, 공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의 기초 학습 능력을 보장하지 못하는 ‘기초 학력 붕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실 현장의 목소리는 이 통계에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많은 교사가 학생들의 어휘력 부족으로 수업 진행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과학 시간에 ‘매질(媒質)에 따른 빛의 굴절’을 설명하자 ‘매질(beating)’과 혼동하여 “왜 때려요?”라고 되묻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수학 시간에는 ‘대변(對邊, 마주보는 변)’을 ‘대변(大便)’으로 오해하고, 사회 시간에는 지진이나 홍수는 알아도 이를 포괄하는 상위어인 ‘재난’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완강하다’를 ‘완전 강하다’의 줄임말로 아는 사례는 이제 놀랍지도 않으며, 기본적인 어휘력과 개념 이해가 부족하니, 독후감 숙제는 책을 읽는 대신 유튜브 요약 영상을 보거나 챗GPT에게 물어 결과를 제출하는 편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습 부진이 아니라, 학습에 임하는 태도와 윤리 문제까지 야기하는 총체적 위기임을 알 수 있다.

 

문해력, 모든 학습과 미래 사회의 기반

 

문해력은 단순히 국어 교과에 한정된 능력이 아니다. 이는 모든 교과 학습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반 능력(Foundational Skill)’이자,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핵심 역량이다. 교과 학습의 측면에서, 문해력은 ‘학습을 위한 독서(Reading to Learn)’ 능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수학 문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계산 능력이 뛰어남에도 손을 대지 못하고, 과학 교과서의 한자어 기반 개념어(승화, 기화, 액화 등)를 이해하지 못해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은 문해력 부족이 전 과목의 학습 결손으로 직결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의 기저에는 ‘교과 문해력(Content Area Literacy)’에 대한 인식 부재가 있다. 많은 교과 교사들은 문해력 지도를 국어 교사의 책임으로 여기고, 자신은 교과 내용 전달에만 집중함. 그러나 교과마다 고유한 어휘와 텍스트 구조가 존재하며, 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해당 교과 수업 내에서 길러져야 한다. “모든 교사는 읽기 교사다(Every teacher is a reading teacher)”라는 구호처럼, 이제는 모든 교과에서 교과 내용과 연계된 독서 활동, 즉 ‘교과 독서’를 통해 학생들의 문해력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상온(常溫)’, ‘상쇄하다’, ‘본질적’, ‘기인하다’와 같은 어휘를 학생들이 당연히 알 것이라는 전제를 버려야 교실 수업이 비로소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아이들의 문해력을 앗아갔는가

 

이러한 문해력 위기는 복합적인 원인의 누적된 결과이며,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의 급격한 전환이다. 긴 호흡의 글을 읽고 사유하는 ‘읽기 문화’는 짧은 영상과 이미지를 빠르게 소비하는 ‘보기 문화’에 자리를 내주었다. 특히 숏폼 콘텐츠는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정보에만 반응하도록 뇌를 길들여, 복잡하고 논리적인 글에 대한 집중력과 인내심을 심각하게 저하 시키며, 이는 단순히 책을 멀리하는 현상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문맹’, 즉 정보를 다룰 수는 있지만 이해하고 사유하지는 못하는 상태를 양산하고 있다.

 

둘째, 어휘 교육의 총체적 부재이다. 우리말 어휘의 70%, 교과 학습 용어의 90%가 한자어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에서 한자 교육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왔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쉽게 익힐 수 있지만, 뜻글자인 한자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개념어는 별도의 학습 없이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한글’과 ‘한국어’의 차이를 간과한 결과이다. 한글 해독 능력과 능숙한 한국어 구사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이며, 후자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어휘 교육이 필수적이다.

 

셋째, 독서 교육의 방법론적 한계이다. 과거의 독서 교육은 양적 측면에 치중한 ‘다독(多讀)’을 강조하거나, 독서 감상문 위주의 독후 활동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정독(精讀)’과 ‘독해력’ 훈련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독서가 입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학생들은 독서 자체의 즐거움과 유용성을 느끼기보다 또 하나의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해결을 위한 제언: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다

 

교육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실마리는 문해력에 있으며, 이제는 문제 현상을 개탄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교육 현장에 뿌리내려야 한다.

 

첫째, ‘국어사전 활용’을 통한 어휘력 교육을 전면화해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시기는 구체적 개념어를 넘어 추상적 개념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학습 어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결정적 시기(Pivot Point)’이다. 이때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스스로 사전을 찾아 그 뜻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이후 모든 학습의 성패를 좌우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국어사전 교육을 강화했지만, 현장에서는 사전 없이 수업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이 적극적으로 국어사전을 비치하고, 모든 교과 수업에서 모르는 어휘가 나왔을 때 사전을 찾는 활동을 자연스러운 학습 문화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독서 교육의 패러다임을 ‘슬로우 리딩(Slow Reading)’으로 전환해야 한다.

양적 다독(多讀)에서 벗어나, 한 권의 책이라도 깊이 있고 꼼꼼하게 읽는 ‘한 학기 한 권 읽기’와 같은 정독 프로그램이 교육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슬로우 리딩은 책 속의 단어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사전을 찾고, 배경 자료를 조사하며, 인물의 생각과 판단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쓰는 통합적인 독서 활동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 심층적 의미를 구성하는 독해력을 기를 수 있다.

 

셋째, ‘모든 교과’에서 문해력을 책임지는 ‘교과 독서’를 실천해야 한다.

문해력은 국어과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수학, 과학, 사회, 예체능 등 모든 교과에서 해당 교과의 특성에 맞는 읽기 자료를 활용하고, 핵심 개념어를 명확히 지도하며, 논리적 글쓰기를 훈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교과별 문해력 지도 역량을 강화하고, 관련 수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개발·보급해야 할 것이다.

 

대전환의 시대, AI는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해 줄 수 있지만, 무엇을 질문하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는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그 모든 고등 정신 활동의 출발점이자 토대는 바로 문해력이라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지식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미래의 주역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무너지고 있는 문해력의 기둥부터 다시 세우는 일에 교육 공동체 전체가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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