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순, 전남 화순의 한 초등학교 과학실.
교감과 교사 등 5명이 약품정리를 하던 중 발암물질인 포르말린이 든 액침(液浸) 표본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 포르말린 1ℓ가 누출됐다.
하교시간이 지나 학생 피해는 없었지만 놀란 교직원들은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소방서와 환경청관리단이 출동한 뒤에야 수거작업은 완료됐다.
나주의 한 중학교에서 2ℓ의 포르말린이 유출된 지 꼬박 두 달만의 사고다.
포르말린 용액은 개구리나 뱀 등 생물 해부 후 보관용으로 사용되며 발암성이 강하고 눈에 닿으면 실명할 수 있고, 호흡 곤란도 일으켜 유해성이 매우 강한 물질이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불과 엿새 앞둔 지난해 11월8일에는 광주의 한 고교 과학실에서 중금속 물질인 수은이 유출됐다.
누출량은 5g 정도로, 수은기압계를 옮기던 과학교사가 발견, 119에 신고했다. 새 과학실로 약품과 집기를 옮기던 중 터진 사고였다.
학교측은 흡착제를 이용, 수은을 빨아들이고 기화를 막기 위해 황가루를 뿌려 황화수은 상태로 처리했고, 출동한 119 대원들과 함께 수은기압계를 밀봉하고 과학실은 폐쇄했고, 학생들도 즉각 하교 조치했다.
지난해 전남 광양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신학기 개학 한 달 여 만에 과학실험실 벽에 설치된 기압계가 떨어지면서 수은 5㎖가 누출돼 수업중이던 학생 3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학교가 위험하다.
특히, 각종 유해물질들로 가득한 과학실은 ‘작은 화약고’다. 포르말린을 비롯해 수은과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염산, 질산납, 브롬, 인(燐) X-선에 이르기까지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 수 있는 물질들이 다량 보관돼 있어 불안감이 작지 않다.
교육과정 개편 등으로 상당량은 교재로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오랜기간 처분할 방법을 찾지 못해, 처리할 규정도 없어 ‘하염없이’ 보관돼 왔다.
중독성 강한 수은이 지난달말 폐기물관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지정 폐기물’로 분류키로 입법예고됐지만 지역 내 처리업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광주·전남 일선 학교에 보관중인 액침표본(포르말린)은 광주 4437㎏와 전남 2만1614㎏ 등 모두 2만6051㎏. 보관용기인 유리병과 포장재를 제외하더라도 20t 안팎에 달하는 양이다. 초등이 3881㎏, 중학교가 1만5061㎏, 고등학교가 7109㎏이다.
폐시약은 광주·전남 통틀어 2만4196㎏에 달한다.
광주가 초등 2567㎏, 중학교 2885㎏, 고등학교 1930㎏을 합쳐 모두 7382㎏, 전남이 초등 5572㎏, 중학교 6175㎏, 고등학교 5067㎏으로 총 1만6814㎏에 이른다.
수은함유 제품도 적잖다.
수은온도계의 경우 광주가 198개교에 6141개, 전남이 281개교에 4288개 보유돼 있으나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수은기압계와 수은혈압계도 광주에서만 82개교에 107개, 66개교에 280개에 이르고, 수은시약은 14개교에 15종이 보관중이다.
시·도 교육청은 연간 6억∼7억원의 별도 예산을 세워 학교에 보관중인 폐시약과 액침표본 등을 수거·폐기하거나 환기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전수조사 결과 새로운 약품과 표본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수은함유 제품의 경우 누출사고를 막기 위해 별도의 보관함에 단독 보관되거나 완충재와 2차, 3차 밀봉을 거친 뒤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시약장에 보관돼오고 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사후처리할 수 있는 전담관리요원 파견과 안전교육 강화, 과학실 안전장구 확충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폐시약은 폐기물관리법상 지정폐기물 전문 처리업체에서 수거·처리해야함에도 일선 교사들이 직접 운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안전불감증과 함께 법위반 논란마저 일고 있다.
광주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 이경호 의원은 2일 “학생 안전을 위협하는 액침표본 등은 소방 당국의 ‘직접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산업건설위 장연주 의원은 “실태조사를 위한 장기계획과 체계화된 안전 점검, 전문기관과의 협업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교육청 관계자는 “폐시약과 액침표본은 관련 예산을 세워 올 상반기 중으로 상당 부분 폐기를 목표로 하고 있고, 수은은 다음달 국제협약인 미나마타협약의 국내 발효를 앞두고 법이 개정돼 전문업체를 통한 합법적 처분의 길이 열린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위험요소를 완전 제거하기 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