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달라진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출제되면 재수의 부담이 늘어나는데도 올해 수험생들 중 상당수는 재수와 N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지난달 16개 서울 소재 대학 수능 위주 정시전형 선발비율을 40% 이상으로 늘릴 것을 권고한 게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는 대학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시를 확대한다고 했지만, 일선 교육현장에선 오히려 재수생을 양산하고 이로 인한 공교육 정상화를 위협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수능 자격고사화 및 논술형·서술형 같은 대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입시업체 유웨이가 626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1.7%는 내년에 교육과정이 바뀌더라도 재수 혹은 N수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이나 내년 정시 정원의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2021학년도 수능은 올해 치러진 2020학년도 수능과 달리 2015 개정교육과정을 적용한 문제가 출제된다. 국어와 수학영역에서 시험범위가 달라진다.
예컨대 2020학년도 수능은 국어에서 화법과 작문, 문학, 독서와 문법 등이 출제됐다. 그러나 2021학년도 수능부터는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언어가 시험범위다. 기존 독서와 문법이 독서로 변경되고 언어가 추가됐다.
시험범위가 달라지면 공부를 기존과 달리 해야 하는 만큼 학업 부담이 커지고 시험을 기피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올해 수험생들은 하향·안정 지원을 하겠다는 비율(13.7%)보다 상향·소신지원을 하겠다는 비율(27.3%)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수를 감내하겠다는 수험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올해 수험생들의 이러한 경향은 지난달 28일 정부가 2023학년도까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수능 위주 정시전형 선발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권고한다는 발표와 관련이 있다.
설문조사를 실시한 유웨이는 “교육과정 개편으로 수능 범위가 바뀌는 전 해의 일반적인 양상과는 달리 하향·안전 지원 의사가 매우 적었다”며 “이는 내년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의한 수능이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시 수능 전형 확대 방침과 맞물려 수험생들은 재수(N수)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재수생 등 N수생 증가는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장을 지냈던 강원대 일반사회교육학과 최현섭 명예교수는 “재수생이 늘어나는 건 예측가능한 이야기다. 정부가 기능적인 것만 판단하면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게 돼 있다”며 “1점을 위해 달려가는 학생들에게 학교활동이 눈에 들어오겠나. 학교 교실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정부가 정시전형 확대를 권고한 2023학년도 이후에는 정시전형을 축소하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2023학년도까지 재수생이 매년 증가하게 되면 자격고사화나 논서술형 수능 등 정시전형을 축소하는 방안들이 더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