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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초졸학력 딛고 37년 공직생활 마감한 윤근호씨
화순교육청 행정과장 끝으로 공로연수 들어가 

가난 속 독학으로 공무원 합격…초졸 20년 만에 ‘학사모’
후배공무원들에게는 “솔선수범해 조직이 필요한 사람 돼야” 

 

▲ 퇴직 후 계획은 세우셨어요?

– 네, 세웠습니다. 첫 번째, 건강관리를 위해 손쉽게 할 수 있는 등산, 실내자전거타기, 걷기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좋아하는 난타도 열심히 배울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고향인 능주 집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서 자연과 벗 삼아 채소를 가꾸기 위해 1주일에 2회 정도 출근할 계획입니다. 세 번째는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등록해서 머리가 녹슬지 않도록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할 계획입니다. 네 번째는 국내에도 좋은 관광지가 많은데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아서 가족과 함께 시나브로 여행할 예정입니다.

 

▲ 약 37년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지난 1981년 국가행정직 5급 을류(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고졸학력이었는데, 근무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①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와 교육과를 졸업하고, 2005년에 교육현장 체험 수기 능력중심 분야에서 학력을 극복한 사례로 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우수상을 받은 것과 5급으로 승진해서 정부지원으로 ③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해 학력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 죄송한 말씀이지만 공무원 생활 하시면서 과장님 학력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이미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제 형편으로는 중학교 진학을 할 수 없다며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알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난과 역경을 잘 극복해 왔다고 용기를 주면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어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어도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느 학교를 졸업했느냐보다는 얼마나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20년 만에 학사모를 쓰셨더군요, 그때 감회가 어떠셨나요?

-지난 1969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난 1977년에 고입자격검정고시, 지난 1979년에 고졸학력검정고시를 합격하고 1989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니까 20년 만에 학사모를 썼습니다.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울컥한 감정, 복받치는 기쁨이었습니다. 

 

▲ 어린 시절 생활과 가정환경 이야기 좀 해 주시죠.

-4남 2녀의 장남이었고, 조부 때부터 논.밭 한 뙈기 없이 어렵게 살아온 생활이 아버지 때까지 이어지다보니 식량은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에서 지원한 구호미에 의존했으며, 선친은 몸이 자유롭지 못했어도 대나무를 얇게 뜨고 잘게 쪼개어 대바구니를 만드는 솜씨가 있었는데 이것이 9식구가 살아가는 호구지책이 되었던 것입니다.
 
▲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공사판과 공장도 전전하셨다면서요?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초등학교 졸업 후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다 돈을 가장 적게 들이는 것이 강의록이라고 생각하고, 1975년 제방 쌓는 공사장에서 돌을 짊어져 나르는 일과 겨울에 경지정리 작업장에서 불도저 체인에 흙이 엉켜 붙은 것을 털어내는 일을 했습니다.
공사판과 공장은 한시적인 일이었고 오히려 마을에서 남의 집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타작, 보리 베기, 보리타작 등 날품팔이하는 일이 주가 됏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조립식 책상을 1,200원에 구입하고, 강의록을 준비해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독학으로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결국은 학원비를 벌기 위해, 먼저 고향을 떠나 경기도 시흥에 살고 있는 아저씨의 소개로 1976년 6월부터 깡통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녁 10시까지 야근하고 퇴근 후 책상이 아닌 방바닥에 엎드려 공부한다는 것은 수면제 역할만 할뿐이어서 공장생활 6개월 만에 고향으로 내려와 1977년 초 광주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3개월을 다녀 그동안 통과되지 못한 몇 개 과목만 시험을 치러 첫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방위복무를 하면서 순수한 독학으로 1979년에는 다음 단계에 올라섰던 것입니다.

 

▲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의 경우는 일단 큰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학력 취득이 목적이었습니다. 1980년 하반기에, 우연히 이장 집에 놀러가서 마을의 유일한 정보 전달 매체인 신문을 뒤적이다 전라남도청에서 공무원 선발을 위한 시험 공고문을 확인하고 광주에 있는 전남도청을 방문해 접수하고, 그 해 10월에 9급 시험을 치러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이왕 공부한 것 실력 테스트 겸 국가직 9급 시험도 보기 위해 1981년 4월에 시험을 치러 또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 37년 동안 공직에 근무하시고, 이번에 무사히 정년퇴직 전 공로연수에 들어가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내년 새해를 맞이해 후배 공무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 감사합니다. 영예로운 정년퇴직은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본인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주위 직원들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이제까지 함께 근무한 직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배 공무원들에게는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언행을 신중하게 하는 사람,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어려운 일에 앞장서는 사람,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즉 신뢰받고 근면하며, 솔선수범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리=한진영기자/samnam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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