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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교육관

오늘날과 같이 과학문명이 발달한 고도의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소외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인간관계의 조성이 시급한 과제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볼 때 대인관계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바른 인간관계 조성의 활력소(活力素)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남녀간, 모자간, 형제간, 사제간, 동료간 등 여러 가지 양상에서 베풀어진다고 보아지는데 여기서는 사제간의 사랑 즉 교육애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교육애를 바탕으로 한 교육관은 이상적인 교육에 대한 포괄적 견해, 교육을 통하여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달성 하고자 하는 목표, 이에 따라 요구되는 수단과 방법과 조건을 포괄함과 아울러 교육전반을 지배하는 가치체제를 의미할 수도 있고, 교육의 과정을 전반적으로 특징짓는 포괄적인 원리를 의미한다고 볼 때 사랑과 교육관의 문제는 우리들의 교육현장에서 더욱 절실한 교육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없는 교육은 청소년들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우려를 낳고 있으며 교육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저해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항은 교육활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다. 애정 없는 교육은 기계의 작동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교육을 ‘사랑의 기술’이라고 해서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교육활동을 가치롭게 해 주는 데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로봇 인간, 컴퓨터의 개발, 스마트폰, TV, 여러 가지 교수기계 등이 수없이 개발, 제작, 활용되는 가운데서 ‘인간교수활동’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바로 ‘사랑’의 묘미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됨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위하여 헤어지는 경우도 없는 바 아니다. 그 헤어짐은 더욱 굳은 하나를 약속하는 것이다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한 사랑은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은 받는 것을 전제하지만 받는 데 무관심하고 주는 것이다. 현상 그대로 주고 이념으로 받는 것이다. 미리 받을 것을 예상하지 않으나 나의 품으로 돌아오는 받을 것은 측량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아낌없이 다 주는 사랑, 그것이 참 사랑인 것이다. 바로 교육자들이 이려한 연유에서 학생들에게 참사랑을 베푸는 것이 교육애라고 본다. 

슈푸랑거는 그의 저서 「천부적인 교사」 에서 교육애에 대하여 사랑 자체가본능적 기원을 가졌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애는 「근본적인 생의 충동이 승화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교사가 교육하며 노력할 때 교사에게 향상과 관철에의 정열을 주는 것이 바로 교육애라고 본다.  

교육애는 어버이의 사랑을 원형으로 한다. 교육애의 위대한 모범은 페스탈로찌요, 그의 교육은 아버지 마음과 어머니 마음을 의지했던 것이다. 여기서 부모의 마음은 결코 동물적 충동적 표현 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자의 정신은 부가할 수 있는 것이요 자연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동양윤리의 군사부일체관을 이러한 교사적 견지에 해석한다면 새로운 의미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교육애는 따뜻하게 감싸고 도와주는 애정이다. 모든 학생들을 애정으로 감싸고 호흡을 같이 하면서 사제가 일체가 되어 학교생활이 이루어진다면 이상적인 학교와 학급사회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일선 교사들의 굳은 신념과 투철한 교육관으로 교단생활을 영위하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애정의 결핍으로 인한 가정문제와 사회문제가 줄어들 것이다. 우리 교육자들은 언제나 모든 학생들을 대할 때 ‘웃는 얼굴, 부드러운 말씨, 따뜻한 손길’로 보살펴 줄 때 학생들의 마음은 맑아지고 국가의 장래는 밝아질 것이다.  

우리 모두 투철한 교육관을 가지고 참다운 교육자로서의 긍지와 사명감으로 사랑의 교육을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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